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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을 앞둔 동네, 사람과 사람을 잇다

작성자 B-pickers(ip:)

작성일 2022-04-20

조회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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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사람과 사람을 잇는 원인동의 동네 사람 커넥터, 

카페 나만 아는 최민희 대표



원인동 옛 동네에서 마을 사람들과 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네 사람 커넥터. 자칭 '프로재미추구러'로 재미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현재 카페 '나만 아는'을 운영하며 재미있는 동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재개발 지역의 골목을 누비며 쓰레기 줍기, 친환경 프리마켓, 에코백 챌린지 등 동네를 잇는 환경 관련 모임을 진행한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최민희입니다. 원주에 온 지는 6년 차 되었어요. 지금은 원인동 골목에 터를 잡은 ‘나만 아는’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동네를 재미있게 만들고자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베이스를 전공해서 15년 정도 음악을 했어요. 홍대에서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결혼해서 남편 직장 문제로 함께 원주로 이주하게 됐어요.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남편의 회사 이전으로 원주에 온 건데 2년 만에 회사가 사라진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커피 로스팅 공장을 운영하면서 투잡, 쓰리잡에 생산직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살았어요. 원주의 지역 특성상 일자리가 다양하지 않다 보니까 처음엔 자리 잡기가 녹록지 않더라고요.


저는 원주 미로 중앙 시장에서 진행했던 ‘청년상인 창업지원’의 지원을 받아 창업했고 거기서 4년 정도 있었어요. 드림캐처와 태팅레이스라는 뜨개 종류와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공방을 운영했었고요. 그러던 중에 19년 1월에 미로 시장에 불이 났고, 그동안 앓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 이전을 결심하게 되었죠.

사실 ‘나만 아는’을 오픈했을 때도 ‘딱, 이거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형태를 잡아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원주 생활에 적응했고, 자리를 잡고 나니 원주에 계속 있고 싶어지더라고요. 덕분에 원주에 잘 정착하게 되었죠. (웃음)




초기 정착 때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다 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텐데, 돌아가지 않고 원주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원주로 오게 되면서 서울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내려왔어요. 거리가 있다 보니 두 가지 일 모두 병행할 수 없었거든요. 기존에 하던 강사 일과 공방을 열려던 계획도 모두 정리하고 내려온 상황이어서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집값’이었어요. 서울에서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또 남편이 서울 살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건, 자꾸 남들과 비교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거예요. 친구들은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집에 살고 이런 것들이요. 그렇지만 원하는 모든 걸 다 충족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가 원주에 오니 확실히 여유가 생겼어요.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이 참 만족스럽더라고요. 결국 “우리 그냥 원주에 계속 있자.”라고 결론 지으며 원주에 정착하게 된 거죠.






‘나만 아는’, 원인동에 자리 잡은 이유는?


19년 1월에 미로 시장에서 화재를 겪었어요. 그때 친했던 사람 중에서는 화재의 피해자들도 있었고요. 화재로 인해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 보니 하나둘 시장을 떠나더라고요. 저도 덩달아 마음이 싱숭생숭해졌고, 또 시장 안에는 해가 들지 않아요. 거기서 4년 정도 있다 보니 좀 지치기도 했고요. 

그래서 가게를 옮겨보자는 생각으로 주변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가장 첫 번째 조건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었어요. 원인동은 시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고, 공원도 있고, 동네도 고즈넉하고 걷기 좋더라고요. 또 제가 어릴 때 살던 동네와 비슷한 느낌도 들고요. 그러던 차에 자리가 나서 냉큼 들어오게 되었죠.


저는 성수동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거기 살고 계시고요. 사실 지금에 와서야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니 힙하니 난리가 났지만, 원래는 그런 동네가 아니었거든요. (웃음) 옛날에 살던 성수동 동네를 떠올리면 지금의 원인동과 비슷해요. 나지막한 집들과 시장, 이웃들. 거기서 오래 살면서 길이 헐리고, 시장이 반 토막 나고, 갑자기 붐을 타고 급격하게 바뀌는 모든 과정을 다 봤어요. 그러면서 떠나는 사람도 많았고요. 

그런 아쉬움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옛 동네에 대한 로망이나 그리움. 그런 게 제 밑바탕에 깔린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하는 일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저희 부모님이나 제가 살던 동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과거의 성수동을 닮은 원인동에 터를 잡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 가게를 얻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원주가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원주의 문제 중 하나가 차가 없으면 불편한 삶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와 그런 거리가 확장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원주뿐 아니라 지방 도시들의 문제로 대두되는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걷는 도시’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서울을 예로 들어보자면, 먼저 청량리에서 기차를 내리면 종로, 좀 더 멀리는 종각까지도 걸어갈 수 있어요. 걷는 시간으로 따지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걷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요. 왜냐면 걸어가는 중간마다 상가들이 바뀌고, 볼거리들이 바뀌고, 그런게 이야깃거리가 되거든요.


그 길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지방 도시나 기획도시의 경우는 사람을 유입시키기 위해 거리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랜드마크 같은 큰 건물만 만들고, 사람들은 그런 건물만 찾아가요. 그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촘촘한 작은 상가들은 거의 방치되기 마련이고요. 일단 상가 구역으로 들어가려면 주차 자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딱지 떼나 안 떼나 확인해야 하는 게 불편한 거예요. 그런 것들이 반복되니 혁신도시, 기업도시 많이 만들어봐도 상권이 생기기가 어려운 거죠. 청년들 투입해 만드는 청년몰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요.


결국, 도시에서는 원도심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원도심의 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 중심이 되거든요. 자동차로는 보기 힘든 거리의 세밀한 모습들, 상가들을 발견할 수 있고요. 그런 재미가 사람들을 몰고 오고 더 찾게 하거든요.

그런 동네들이 연결되고 함께 활동하면서 결국 시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걸어 다니는 것은 환경과도 연관이 있고요. 모든 건 그렇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나만 아는’에서 하는 활동들을 소개해 주세요.


원인동은 ‘남산’이라는 산을 중심으로 나래지구, 다박골 지구, 남산 지구, 원동 주공아파트. 재개발 지구 네 개가 물려있어요. 


재개발이라는 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성수동을 봐도 그래요. 부모님이 지금까지 살고 계시는 아파트에 제가 열두 살 때 들어갔는데, 지금 서른여섯이거든요.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재개발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어요. 재개발 지역은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첨예한 이익 다툼을 비롯해 조율이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요. 또, 어차피 재개발될 곳이니 행정적으로도 약간 방치되는 부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사는 동네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고, 또 제가 환경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 둘을 접목해서 동네 사람들과 환경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죠.


일단, 원주 밥상공동체 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청년 공유주택’과 협업해서 환경과 관련된 캠페인이나 동네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공유 에코백’ 프로젝트에요. 원래는 환경을 위해 구매했지만, 유행이 지나다 보니 구매한 것을 사용하지 않고 놔두게 되고, 그러면 오히려 환경을 위한 소비가 아닌, 생산해서 버려지는 것과 다름없게 되거든요. 그런 에코백들을 모아 나누어 쓰는 ‘공유 에코백’ 형태로 써보는 거예요. 장 보러 갈 때 비닐을 쓰지 말고 가다가 들릴 수 있는 몇 군데 장소에서 공유 에코백을 빌려서 쓰고 편할 때 돌려주는 시스템이에요.


또 플로깅*도 하고 있어요. 이 동네가 재개발 구역이다 보니, ‘여기는 어차피 없어질 동네니까’라는 생각으로 쓰레기를 그냥 버리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재개발 지구 안쪽에 있는 골목을 돌면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사진기록을 남기는 모임도 하고 있고요.


그것과 더불어 ‘남산 마켓’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남산 마켓’은 원인동의 남산에서 열리는 리사이클링 마켓이에요. 판매 물품으로는 다시 쓸 수 있는 중고용품이나, 기업의 경우는 재고상품이나 샘플로 제작했던 것들을 판매해요. 자원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거죠. 오시는 분들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니 좋고요.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에는 청년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카페 2층에서 영화를 보는 모임이나, 캘리그래피 모임 같은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소모임을 진행했었거든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걸 확대해서 동네 분들이 동네를 좀 더 ‘애정’할 수 있는 형태의 움직임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동네 분들과 좀 더 끈끈해진 느낌? 지나면서 아는 척도 해주시고요.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 플로깅 |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스웨덴에서 시작돼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플로깅은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재개발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재개발을 반대해요. 인구는 계속 줄어가는데, 아파트만 계속 만들면 나중에 정말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동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집과 집을 연결하는 골목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무너지기 쉬운 것이 재개발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땅 주인들은 여기 안 살아요. 여기 실제로 거주하는 분들은 땅 주인이 아니고 매달 월세를 내는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여기서 나가서 이만큼 돈을 주고 방을 구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거든요.

보통 재개발을 하게 되면 일단 아파트를 짓고, 그 옆에 임대주택을 하나 지어요. 그래서 여기 계시는 분들이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임대주택 거주자들과 일반 아파트 거주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도 사회적 이슈로 많이 언급되잖아요. 차별의 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는 씨앗이 되기도 하거든요. 이런 이유가 있다 보니 동네 분 중에도 재개발을 원치 않는 분들이 꽤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문제들 때문에 재개발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고요. 여기서 한평생을 사셨던 어르신들이 다 어딜 가시겠어요.


그렇다고 재개발을 막을 수는 없어요. 제가 엄청 부자가 돼서 이 땅을 다 사지 않는 한은요. (웃음)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동네를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일 정도예요. 카페 2층에 통창이 있는데 그 통창으로 건너편 골목의 한옥 지붕들이 보이거든요. 처음 가게를 보러 왔을 때 그 풍경이 액자에 걸린 그림처럼 너무 좋더라고요. 바라보고 앉아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 창 너머로 나지막한 집들이 있고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풍경들이 좋아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 풍경을 보고 갔으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좋았던 점이나 힘들었던 점, 겪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실 여기 사는 동네 분들은 젊은 사람이 들어온 것을 좋아하세요. 젊은 사람이 들어옴으로써 생기는 활기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일단 인사를 많이 했어요. 서울에서 온 젊은 부부가 어른들만 사는 동네에 왔을 때, 동네 분들도 겁이 나잖아요. 솔직히 저희도 원체 지방의 텃세 같은 이야기를 많이 접하다 보니 겁이 나긴 했어요. (웃음) 그런데 온라인으로 지방에 정착한 사람들의 팁을 들었는데, ‘인사’를 많이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일 많이 했던 게 인사였어요. 그리고 뭐가 있으면 좀 나누고요. 그래서인지 다행히 제가 지금 하는 활동들을 동네 분들도 많이 지지해 주시고, 참여는 못하더라도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세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얼마 전에 작년에 원인동에서 작업했던 책자가 있어서 동네에서 몇 번 마주쳤던 사장님께 그걸 드리면서 “사장님 저희 원인동에서 이런 걸 했었어요. 책자가 나왔는데 시간 되시면 읽어보세요. 책 너무 잘 만들었어요.”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절 안아주시면서 고생이 많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잘 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죠.

또, 어떤 할머니가 오셔서 남편분이 생신이라고 떡을 돌려요. “우리 신랑이 생일이야, 이거 하나 먹어.” 하면서 생일 떡을 주시는 거예요. 예전에 우리가 살던 그 동네 있잖아요. 그때 그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도 옆집이랑 너무 잘 지내고요. 뭐 맛있는 것 있으면 나누고, 챙겨주시고 그런 정이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삶의 모토나 추구하는 방향이 있나요?


요즘은 저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프로 재미 추구러’라고 말하곤 해요. 뭘 하든 재미있어야 해요. 제가 지금 하는 모든 활동을 보면 사람이 바뀌는 게 보이거든요.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저는 사람 연결하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동네를 연결하는 일도 계속할 거고요. 동네의 어르신들이 저희 가게에 오셔서 깔깔 웃으시면서 “나 오늘 수세미 실로 가방 떴어!” 이런 이야기 나누고, 또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오셔서 매번 ‘카라멜 마키아또’를 주문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요.

계속 마을과 사람을 연결하고, 재개발보다는 고쳐서 쓰는 삶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그것과 관련된 프로젝트들도 많이 준비하고 있고요. 사람들에게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 있는 것을 고쳐서 쓰는 것도 좋은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경제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수익 창출은 어떻게 하시나요?


그래서 여기가 카페인 거예요. 고정수입은 카페에서 나오고 있어요. 이곳이 커뮤니티 공간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뜻이거든요. 저도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대신 동네 위치상 큰돈을 벌 수는 없어요. 그리고 큰돈을 벌 생각도 별로 없고요. 처음 시작부터 제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거였으니까요.


저는 살면서 여유로웠던 적이 없던 것 같아요. 매달 마지막 날에는 통장 잔액이 0원인 삶을 살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맨날 오래된 것 주워와서 나름 괜찮아 보이게 바꿔서 고쳐 쓰고, 그게 제 기술이 된 것 같아요.

사실 남편과 처음엔 수익 문제로 다툼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이 공간에 점점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걸 보면서 ‘아, 쟤가 돈을 따라가는 애가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조율해가는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은 좋은 후원자예요. 다행히 지금은 제가 신랑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줄 수 있는 상황까지 됐어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조금씩 한쪽에 쟁여 놨다가 또 쓰고 또 모으고 하는 삶이지만 당장은 돈 생각 크게 안 하고 살아요. 사실 그게 원주라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앞으로 이런 공간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돈은 못 벌 수 있어요. 그리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6~7년이 걸렸거든요. 적당히 수박 겉핥기로 하기에는 인내가 많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또 꾸준히 내실을 쌓아야 하고요.

물론 원주에 와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 힘든 시기들이 저에게 좋은 양분이 되면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특히 문화와 관련된 일들은 오랜 시간이 드는 일이다 보니, 찬찬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에요. 누군가가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지만 그걸 떠나 냉정하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해요. 사람에 대한 감정과 공적인 일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요.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 중에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해요. 사람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쿨하게 인정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길인 것 같아요. 저도 시행착오를 겪고 깨달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참 어려워요. 다 내 맘 같을 수는 없거든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세요.


저는 원래 음악을 했던 사람이다 보니까 처음 원주에 와서는 아무래도 문화적 갈망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고, 함께 활동할 사람이 없다는 것 때문에 조금 외로웠거든요. 또 비슷한 이유로 큰 도시로 떠났다가 한계점을 느끼고 다시 돌아와 지역에서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새는 교통이 발달하면서 수도권과의 거리도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원주는 여유로운 삶과 번잡한 삶을 동시에 누리기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원주에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지인들에게 지방 살이가 참 괜찮다는 것을 알리게 되고, 자꾸 여기로 불러들이고 있거든요.


그래서 ‘나만 아는’이 창작자가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동네의 장점이 주변은 조용하고 회의하기 좋고, 너무 도심도 아니어서 좋아요. 빽빽한 공간을 떠나 좀 더 여유 있는 공간에서 좀 더 열린 사고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어요.

창작자들이 모이게 되면 사람들도 이 동네에 관심을 두고, 예술인들이 모이는 동네가 되겠죠. 또, 문화에 대한 욕구나 갈망들도 이곳에서 풀면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갈 수 있을 거고요. 그래서 요즘은 원인동을 ‘힙인동’으로 만들기 위해 밀고 있어요. (웃음) 문화예술인들이 자꾸 찾아오셔서 이 동네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서울 가면 옛날 동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익선동, 문래동, 성수동을 가잖아요. 원주에도 그런 동네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이제 곧 없어질 수 있으니 여러분들의 눈에 담아 가셨으면 좋겠어요.







나만아는 @onlyiknow19

에디터 | 신동화 @slow_mihak




댓글목록

  • 작성자 김****

    작성일 2022-04-28

    평점 0점  

    스팸글 최민희 대표님이 원주에 자리잡은지 6년이라는 말에 깜짝 놀랍니다.
    그간의 활동이 워낙 왕성했기에 서울에서 내려오신건 알았지만 그렇게 짧은 기간이었는지는 몰랐네요. 이제 원주의 진정한 골목대장이시구요~ 앞으로의 행보도 많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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