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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의 작은 기지, 창작자 3인방

작성자 B-pickers(ip:)

작성일 2022-04-22 00: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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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원도심의 작은 기지, 

창작자의 아지트를 꾸려가는 3인방

오후대책 고승현·이새보미야·곽슬미




원주의 원도심 일산동 로데오 거리, 길을 걷다 보면 의외의 장소에 비밀스러운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 세 명의 창작자들의 아지트인 ‘오후대책’이 나온다. 새보미야 씨는 원주에 관한 글을 쓰고, 슬미 씨는 일상을 즐겁게 만들 문화기획과 디자인을 한다. 승현 씨는 오래된 단관극장에 대한 단편영화를 만들고, 작은 상영관에서 독립영화를 상영한다. ‘3-1=0’이라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3인의 이야기를 인터뷰했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승현  원주에서 영화일 하는 고승현입니다.

미야  저는 이새보미야라고 합니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어요.

슬미  원주에서 문화기획,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곽슬미입니다. 활동명은 ‘미몽’으로 알려져 있어요.






원주에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나요?


승현  원주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원주로 이사 와서 초·중·고등학교 모두 원주에서 졸업했어요. 대학교만 잠깐 춘천으로 다녀오고 원주에서 쭉 살았죠.


미야  저는 원주에서 태어나서 잠깐 영월에 살긴 했는데 다시 돌아와서 대학까지 원주에서 졸업했어요. 사실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여기에 집이 있고 먹여주고 재워주니까요. (웃음)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특별한 직장이 없이 일하고 있어서 원주에 있게 되다 보니 계속 원주에 있게 됐네요.


슬미  저는 원주 토박이는 아니고 본가가 동해인데 대학에 입학하면서 원주에 와서 지냈어요. 사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원주나 동해에 남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있으니 쫓겨나듯 수도권으로 취직했어요. 제가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렇게 이주해서 6개월 정도 일하다가 직장 생활이 안 맞아서 원주로 내려왔어요. 당시에 원주에서 청년문화기획자 양성 관련 사업을 하던 시기라 원주에 남아있던 선후배의 창업⋅창직 사례가 있었고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들이라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


‘뭘 하든 원주에 가서 정착해서 뭔가 해보자’라는 마음이었죠. 또 그 당시 사업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라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원주에서 진행하는 문화기획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원주에 다시 온 지는 이제 5년 되었네요.




‘오후대책’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승현  사실 이전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슬미 씨랑 일 때문에 만났어요. 당시 공간에 대한 필요성과 자본 부족에 대한 공감대가 있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결합을 해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온 상태였고, 그러다가 슬미 씨가 새보미야 씨를 소개하며 재작년 9월에 처음 만나게 되었죠.


미야  저도 슬미 씨를 알고 있었지만 되게 친한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슬미 씨가 공간을 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만났는데, 곧바로 가게 자리를 보러 다니게 될 줄 몰랐죠. 굉장히 급진적으로 일이 진행됐어요. (웃음) 


슬미  승현 씨가 말한 것처럼, 청년 거버넌스에서 운 좋게 승현 씨를 만났는데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시에 새보미야 님도 공간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거기에 승현 씨를 끌어들인 거죠. 정말 타이밍이 딱딱 맞았어요.






동업이 쉽지 않잖아요. 동업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미야  승현 씨가 보증금을 내고 나머지 비용은 각자 부담하며 나눠서 내기로 했어요. 사실 승현 씨가 조금만 생각을 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웃음) 저도 조금만 계산적이었으면 ‘얘네가 지금 이렇게 쉽게 계약을 한다고?’ 이런 생각도 했을 텐데, 사실 당시에 다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돈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실 9월에 만났을 때는 그냥 한번 보자는 느낌이었는데 계속 같이 자리를 보러 다니다 보니 엉겁결에 이렇게 됐어요.


승현  이야기를 포장하자면 하나의 ‘사회 실험’ 중 하나였죠. (웃음)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규칙부터 만들어보자, ‘협동조합의 도시’답게 말이죠. 사실 전혀 그것과 관련 없는 삶을 살았지만요.

저도 기준에 대해 엄격한 사람은 아니라 뭔가 하나씩 함께 만들어가면 괜찮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보증금을 내긴 했지만, 두 분이 공간에 들어가는 가구나 집기류, 콘텐츠는 두 분이 제안을 많이 하셨고 또, 브랜딩을 재미있게 해주셔서 그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슬미 씨를 리스펙트 하는 부분이 있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요.


슬미  세 명이 굉장히 급하게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운 좋게 서로 잘 맞았죠. 사실 제가 누구와 잘 맞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두 분이랑 너무 잘 맞았어요. (웃음)

하지만 서로 내밀하게 알아가거나 파악할 시간이 부족해서 생활 방식이나 하물며 청소의 기준도 달라서 오는 격차도 물론 있었어요.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죠. 그렇지만 지금은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요즘 각자 너무 바빠지는 게 아쉬울 뿐이죠.


저희가 시작할 때 자금적으로 충분하거나 운영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등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그런 점에 비하면 저희 주변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역할과 원주에 사는 20~30대 청년들이 가끔 특별한 순간에 놀러 오고 싶은 공간의 역할 정도는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나름 뿌듯해하고 있어요.




승현 씨는 무슨 일을 하나요?


승현  저는 일단 ‘오후대책’의 토요일 운영자를 맡고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오후대책’ 안에 작은 소규모 영화관인 ‘고씨네(Go-Cine)’를 운영하고요. 고씨네는 9석의 작은 상영관이에요. 주로 원주에서 보기 어려운 독립예술 영화, 단편영화를 상영해요.


그런데 최근에는 코로나와 외주 제작 때문에 바빠져서 아쉽게도 상영을 못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간을 유지하려면 적당한 수입이 있어야 하다 보니 영상 제작과 개인적인 영화 작업을 병행하며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영화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승현  우선, 제가 보고 싶은 영화 위주로 선정해요. 일단 보고, 재미있다면 가져와서 상영하고요. 단편영화 배급사가 있어서 괜찮은 영화를 추천받아 가져오기도 해요.




원주에서 독립영화 상영관을 운영하기가 어때요?


승현  아무래도 지역적 한계를 느끼긴 해요. 첫 번째로는 ‘독립영화’ 혹은 ‘단편영화’라는 문화를 기존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다 보니 퍼져나가는 속도가 느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서울에는 독립 책방이나, 독립영화 등의 소수를 위한 ‘서브컬쳐 씬(subculture scene)’이 잘 형성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지역에서는 사실 쉽게 찾아보기 힘들죠. 이건 인구수나 문화의 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좀 슬픈 생각인데, ‘원주 사람들이 이런 걸 바라지 않나?’라는 생각이에요. ‘시민들은 사진 찍어 올릴만한 휴양지나 미술관을 원하지 생활문화에 관련된 소소한 문화 소비는 바라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도 하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울에도 문을 닫는 책방이나 영화관이 있잖아요. 결국, 지역이 어디든 상관없이 문을 닫는 상황들이 생기지만, 그걸 얼마나 붙들고 있는가, 그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씨네(Go-Cine)는 회사이기도 하잖아요. 직원은 몇 명이에요?


승현  저 포함 4명인데, 한 분은 아내가 출산해서 휴가를 가셨어요. (유급인가요?) 네, 유급. 그래서 세 명이 네 명분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은 회사인데 복지까지 챙기다니 대단해요.


승현  일단 해보는 거죠. 뭐. 사실 주변에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을 못 봤어요.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붙잡아두고 싶어서 조건을 내건 거죠. (하하)




영상은 어떤 영상 위주로 찍으세요?


승현  제가 주로 찍고 싶고 싶은 건 영화예요. 작년에는 지역을 주제로 단편영화를 찍었고, 올해도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서 영화를 찍어야 하고요. 그리고 기관에서 외주 들어오는 건 지역 소개나 마을 활동 홍보영상 위주로 하고 있어요.






찾아주는 사람이 꾸준히 있으니까 좋으시겠어요. (부러움)


승현  좋죠. 일이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게 좋더라고요. 요새 일이 없어서 방황하다가 통장 잔고를 보고 정신을 차렸어요. (웃음)




새보미야 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미야  저는 ‘오후대책’에서 목요일과 금요일 운영자를 맡고 있고요. (웃음) 그리고 ‘창고 밑 책방’이라는 오후대책 내 작은 서가를 운영하고, 소모임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샤퀴테리 연구회’, ‘글냄(GLAM)’이라는 참가자들이 원하는 장르의 글을 쓰는 습작 모임도 하고요. ‘쫀쫀한 독서 모임’, ‘원주통닭 다큐 모임’도 했었고, ‘생존 모임’도 했었고요. 되게 많아요. 그리고 오전 시간에 공유 오피스처럼 공간을 공유하는 ‘오전대책’도 했었고요.






글도 쓰시잖아요?


미야  개인적으로 하는 일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데요. 주로 취재하거나 기사를 쓰거나 원고를 쓰고요. 정기적으로는 시정소식지인 ‘행복원주’의 커버스토리를 쓰고, 원주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의 ‘원주롭다’에 매주 칼럼을 쓰고 있어요.


불규칙하게는 잡지나 기타 매체에서 외주 들어오면 취재해서 기사를 싣거나 글을 쓰고요. ‘원주독립출판교류회’를 운영하며 독립출판으로 책을 몇 권 내기도 했어요. ‘여전히 카미노를 걷는다’와 ‘원주통닭’을 썼습니다.




원주 통닭 다큐 모임은 뭐예요?


미야  이웃인 ‘낭만사’의 김지홍 씨가 ‘원주통닭’ 책을 읽고 재미있겠다고 다큐 모임을 제안하셔서 영상을 찍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다큐를 만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만나서 통닭 먹으며 수다 떨고 있습니다. (웃음) 통닭 먹는 수다 모임이죠.

처음에 ‘원주통닭’ 책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통닭집들을 찾아 취재해 보자는 이야기를 했으나, 각자 생업이 있어서 자유롭게 모이는 편이에요. 언젠가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생존 모임은 뭐예요?


미야  원주 영상미디어 센터에서 함께 수업 들었던 분 중에, 제 또래 30대 초반의 여성 두 분이 원주에 처음 정착하게 되셨어요. 아무래도 같은 나이 또래다 보니 ‘건강 문제’나 ‘영양제’ 같은 공감대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 이야기 나누다 어쩌다 보니 집단 상담처럼 모여서 각자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모임이 된 거예요.







재미있는 모임이 많네요. 기획은 새보미야 씨가 하시나요?


미야  ‘이런 모임을 해야지’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모여져서 ‘이거 한번 해볼까요?’라는 느낌으로 시작해요.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제들이 모여지니까요. ‘쫀쫀한 독서 모임’도 원래는 공간 유지를 위한 약간의 수익을 위해 시작했는데, 모임에서 ‘인간으로서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마침 단골손님 중에 철학과 박사과정이신 분이 계셔서 그분을 연결해 같이 시작하게 되었죠. 

대부분 저희가 진행하는 모임은 이렇게 계획이 없이 시작되었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또 우연히 모이고 그런 식으로 진행돼요.




슬미 씨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슬미  원주에서는 지난 5년간 문화기획자로 활동했고요, ‘오후대책’에서 생산하는 기획물들의 디자인을 맡고 있어요.







어떻게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슬미  사실 처음엔 디자인에 관심만 있고 취미로 하던 일이었어요.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그림을 잘 못 그려서 못 가고, 창작하고 싶은 욕구는 계속 있었는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는 기술적으로 부족한 상태였죠. 그러다가 제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찾아냈고, 작게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또, 당시에 활동하던 문화기획 활동에서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발을 넓히게 되었고 그걸로 자연스럽게 외주 의뢰를 받게 된 거예요.




그동안 하셨던 작업이 궁금해요.


슬미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동네에 대한 향수’거든요. 제 고향인 ‘동해’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해요. 지역에 대한 향수는 누구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감성이 있다 보니 지역과 맞물려 기획으로 잘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작업을 소개하자면, 일단 ‘단란 감영’*이라고 2019년에 했던 행사로, 원주 원도심에 있는 강원 감영에서 시민들이 주말을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기획했어요. 예전에는 원도심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즐길 거리가 있었는데, 점점 원도심이 쇠락하는 걸 보며 구심점이 될 만한 행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주로 ‘일상성’과 연관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주말에 시민들이 밥을 먹으러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잠시 들릴 수 있는 정류장 같은 느낌이면 좋을 것 같아서, 강원 감영의 대청마루를 활용해 공방처럼 원데이클래스를 하거나, 오픈 책방으로 만들거나, 마당을 공연장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강원감영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죠.

이 기획을 보시고 기관에서 관심을 주셔서 비슷한 맥락의 콘텐츠를 연속적으로 했어요. 원인동 재개발 지역에서 진행했던 ‘남산맨션*’이나 태장동의 캠프 롱(Camp long) 개방행사인 ‘CAMP2020*’에서 ‘아이엠 히어*’라는 시민 참여 전시도 기획했어요. 그렇게 이어져서 올해는 ‘걷다 보면, 원주롭길*’이라는 걷기 챌린지 캠페인을 맡아서 진행했어요.



* 단란감영(2019) |  원주시 일산동, 중앙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골목문화’를 비롯한 여가문화콘텐츠의 확장으로, 원도심의 랜드마크인 ‘강원 감영’에서 진행되었다. 인디밴드의 공연, 원데이 클래스, 아트워크 및 전시프로그램, 오픈 책방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 남산맨션(2019) 원주시 원인동 재개발 지역에서 사진 전시나 영화 상영, 골목 출사 및 다양한 시민 참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namsan_mansion)

*CAMP2020(2020) |  원주시 태장동에 조성된 옛 미군부대 기지인 캠프롱(Camplong)이 2019년에 반환되고 68년 만에 처음으로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진행했던 행사로 창작예술 프로젝트의 전시와 체험, 문화도시 포럼, 그림책 공연이 진행되었다.

* 아이엠히어(2020) | ‘CAMP2020’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사진을 모아 ‘아트 포트레이트’ 포스터와 키링으로 구성된 아트 키트를 증정했다.

* 걷다 보면 원주롭길(2021) | 시민들이 하루 동안 걸었던 횟수를 인증하는 사진을 ‘원주롭다’ 사이트에 공유하면 1보에 1원씩 모아 취약 계층에게 기부하는 걷기 챌린지 캠페인이다.



| 블루칩 프로젝트 @bluechip.everywhere



동시에 개인적인 작업도 꾸준히 하시죠?


슬미  처음에 원주에 올 때는 ‘좋아하는 일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왔는데, 그 간극을 빨리 깨달은 편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돈을 벌 수는 없더라고요.

의뢰받은 일들을 처리하는데 한 해를 다 보낸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미뤄둘 수밖에 없었죠. 그러고 나니 일이 미워지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현타’의 시기를 맞게 되거나 일을 오롯이 사랑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많이 하게 되었고, 19년부터는 개인 작업을 위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개인 작업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나요?


슬미  저는 정보에 빠삭하거나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 공부를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감각이나 가치관, 취향에 의존하는 편인데, 그게 점점 쌓이면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잡아요.

‘블루칩 프로젝트(Bluechip project)’를 예로 들면, 저처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들은 비수기와 성수기가 극명하게 나뉘거든요. 지난 1년간은 코로나의 영향도 커서 비수기가 꽤 길었어요. 그런 시기를 나름대로 잘 넘겨보자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거죠.


코로나 때문에 대면으로 창작자를 만날 기회가 적어져서 그런 창작자를 알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 겸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어본 거예요.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나, 꼭 지역이 아니라도 꾸준히 작업하는 분들을 눈여겨보던 중에 그분들을 느슨하게 엮을 수 있는 기획으로 진행해 봤어요.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뒀다가 개인 작업할 때의 영감으로 사용하곤 해요.



| <stay, toji 2021> 토지문화관에서의 한 달간의 스테이 기록을 포스터로 재구성



원주에는 창작자 커뮤니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각자도생이라고 해야 할까요?


슬미  예전부터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려는 시도는 있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아무리 개인이 필요성을 느낀다 해도 꾸준히 유지되려면 관련 기관의 지원이나 서포트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초창기에 한창 원주에 인재들이 넘쳐나던 때가 있었어요. 청년 관련 사업들로 눈에 띄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요. 그런데 그 알맞은 타이밍을 놓치고 나니 다들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버렸죠. 


17년도에 원주에 왔을 때, 저는 이미 주변에 선후배나, 사업에 바로 참여할 수 있어서 덜 낯설었지만, 지금 아무 네트워크도 없이 원주에 딱 떨어진 사람은 좀 막막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맑은 물’이 없어요. 그런 게 좀 안타깝죠.

사실 저도 노출은 많이 되었지만 실제로 돈을 벌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이렇게 고정적인 수입을 내기가 어려운 데 진짜 이 일이 좋아서 몇 년씩 투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로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오후대책’ 공간을 되게 느슨하게 운영하시는데, 이유가 있나요?


미야  사실 저는 처음에 글을 쓰기 위한 작업실이 필요했거든요. 그러니 생업인 글쓰기에 지장이 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으로 운영하자고 주장했죠. 지금보다 더 짧게 하자고도 했어요.

지금도 손님이 오시는 것보다는 저희가 회의하거나 작업실처럼 쓰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워라밸’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인 거죠. 만약에 공간 운영이 생업이었다면 훨씬 더 열심히 했겠지만, 이곳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돈이 나가는 곳이잖아요. (웃음)


그런데 요즘 모임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너무 아는 사람끼리만 모임을 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러려면 유입이 되어야 하잖아요. 처음부터 이 공간을 작업실처럼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었던 것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거든요.

그냥 저의 바람은 이 공간에 새로운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서 ‘썩지 않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예요.


승현  저도 새보미야님과 같은 마음이에요. 지금은 2-6시까지 운영하고 있고, 늦게까지 작업하면 그 이후로도 열 때도 있는데, 이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공간이 약간 울리다 보니 사람이 많이 오시면 정신이 없기도 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오셔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승현  저는 왔다 가시면서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려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웃음) 가끔 해시태그 찾아보잖아요. ‘사진 잘 찍어주셨네.’ 그런 거 기분 좋고요. 소소한 행복인 것 같아요.

또 가끔 영화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등장인물이나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것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과정도 재미있어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관객에게 남겨진 몫이 있기 마련인데, 그 몫을 충실하게 해주는 관객이라 좋은 것 같아요.


미야  저는 옥상에서 맥주 마신 게 기억나요. 옥상에 공간이 있거든요. 맥주 마시고 수다 떠는 그런 기억들이 너무 좋았어요. 겨울에는 바가지에 뜨거운 물 데워서 청주 마시고요. 거의 술을 마셨던 기억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웃음)

또, 취향이 비슷한 손님이 오시는 게 신기해요. 이 공간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긴밀한 연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슬미  MBTI로 넘어가는데, 승현 씨랑 새보미야 님은 ‘E’예요. 저는 ‘I’거든요. 공간에 사람이 많은 건 좋은데, 저한테 말은 안 걸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저 두 분은 손님을 맞이하는 데 정말 진심이에요.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이런 이미지가 그려지네요. 사람들이 각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저는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순간들이 가장 좋고요. 바로 앞에 창문으로 보이는 큰 아름드리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저의 낙이에요.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이 아름답거든요.




세 명이 함께 운영하며 얻는 시너지 효과가 있나요?


미야  자극을 꽤 받죠. ‘나도 뭔가 하고 싶다. 글 써야겠다.’ 이런 느낌? 확실히 동기부여가 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실제 결과물도 있어요. ‘원피스(Won-piece)’라는 엽서나, 글귀, 포스터가 들어간 패키지를 제작했는데, 그것도 슬미 씨가 기획해서 글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 제작했거든요.


승현  상당한 자극과 동기부여가 돼요. 슬미 씨 같은 경우는 꾸준히 개인 작업을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더 자극을 받아 영화 작업을 한 것도 있어요. 아티스트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양한 삶의 양식이 있다는 것을 보면서 느끼고 배우죠.


슬미  셋 다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니 분명히 영향은 있을 거예요. 오히려 같은 지점보다 다른 것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영화감독이 꿈이었는데, 영화를 찍는 승현 씨를 보며, 글을 쓰는 새보미야 님을 보며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오후대책 사람’이라는 걸 누구에게 소개하거나 이야기할 때 두 분이랑 같이 한다는 게 좋은 사람 둘이랑 같이 한다는 느낌이라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나를 표현하거나 소개하는 방식이 되기도 해요.






내 삶의 모토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승현  최근에 좀 많이 생각한 건데요. 사기꾼이 되지 말자는 거예요. 말은 수려하고 주변 평판으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겪었을 때의 역량이나 능력들이 뒤처지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많이 생각하게 돼요. 허울뿐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려고요.


미야  ‘기래끽반곤래즉면(饑來喫飯困來卽眠)’ 당나라의 고승인 ‘나찬선사’의 말인데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라는 뜻이에요. 어릴 때부터 좌우명으로 삼은 말인데, 이 말처럼 살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삶의 방향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 사실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확한 목표를 두고 살지는 않고 닥치는 대로 살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슬미  ‘하루하루는 열심히, 인생은 되는 대로.’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목적지가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목적지와 방향을 알고 있되 되는대로 산다. 

사실 말이 쉽지 되는대로 잘 살기 위해서는 머릿속으로 쉬지 않고 상황을 이리저리 예상해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해요. 그런 것들이 기반에 깔려있어야 생각한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겠죠. 백조처럼 유유히 떠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발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듯이요.




현재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나요? 지금의 나 자신은 어때요?


승현  좋아하는 일을 계속 찾아 나가고 있는 상태예요. 작년에는 영화관을 열고 싶어서 영화관을 열었고, 올해는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자꾸 영화를 만들 기회를 만들고 있어요. 지난 3월에 만든 ‘남아있는 순간들’이라는 단편영화로 영화제도 나가고, 배급도 많이 되어서 예상보다 많은 일을 이뤄낸 것에 대한 성취감이 있어요. 올해 말에도 영화를 한편 더 만들어야 하고요. 그런 식으로 한 단계씩 해나가는 것이 좋아요. 재미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고요. 요즘엔 유튜브 계정도 열었는데, 어떻게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성장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미야  저는 일단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고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나마 내가 할 수 있고 싫어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그중에 즐거움을 찾는 정도라고 할까요?

사실 요새 번아웃이 와서 그럴 수도 있어요. 지금 당장 ‘덕질’할 대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와 달리 좀 지쳐있는 상태라, 다시 좋아할 수 있는 뭔가를 찾으면 열정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한 번에 몰두해서 일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프리랜서라 일이 지속되는 게 아니라 단발성의 작업들이 많은 편이라, 일에 몰두할 기회도 잘 생기지 않고, 막상 기회가 생기더라도 생업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그 감각을 상실한 상태예요.


슬미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 생활을 버틸 수 없어요. 서로 보완관계에 있죠. 작용과 반작용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일반 직장인분들 중에서도 문화나 예술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창작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맞물려있어야 해요.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죠.

다행히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 균형을 잘 맞추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 목말라요. 좀 더 많이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 나와 같은 공간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승현  절대 하지 마세요. 통장에 100억이 있다면 하세요. (웃음) 어느 날은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사람들의 시선’이나 타인이 나를 정의하는 말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 보니, 이 일이 빠진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 고민을 반복하면서 계속 일하고 있어요.


미야  공간을 운영하려면 정체성을 분명히 생각하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까지 애정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투자하세요. 몸을 사리라는 얘기가 아니라 ‘나를 소진하지 않으면서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잘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뭐라고 조언할 수 있을 만한 글을 쓰지 않아서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저는 마감이 저를 끌고 가고 있거든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웃음) 요즘 저는 글을 쓰기 위한 원동력을 찾지 못해서 불행한 것 같아요. 소진되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비법이 하나쯤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슬미  저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포기할 수 있는 각오가 돼야 오래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자기 PR을 많이 해야 해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아도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두거나 작업들을 아카이빙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어 하는지, 힘들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일할 때는 언제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며 정의해 보는 게 필요하고, 그것에 익숙해져야 해요.

마지막으로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뭔가를 ‘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자꾸 나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세요.


승현  저의 목표는 일확천금, 무병장수, 불로소득입니다. 그리고 인터뷰 끝나고 바로 인천으로 넘어가서 지역 영화 기획개발 지원 사업 협약식에 참석하러 가야 해요. 올해는 계속 영화를 찍는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보낼 것 같고요.

또, 육아 휴직한 직원의 인건비까지 벌고자 열심히 일해야 하고, ‘오후대책’도 잘 운영하고 상영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아직은 여건이 어렵네요. 이 공간의 계약도 끝나가는데 일단 1년은 연장하려고 해요. 코로나가 끝나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코로나가 끝나면 댄스파티를 열고 싶어요. (웃음)


미야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지금은 순간마다 가성비를 따지며 살아야 하는데 그만하고 싶고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하면서도 잘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일단 지금 바쁜 일을 처리하고 떠날 거예요. 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제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날 겁니다. 그게 희망 사항이에요. 그래야만 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엔 산티아고를 다시 걷지 않을까….


슬미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제 본가인 동해로 돌아가는 게 목표예요. 일하고 경험을 쌓는 것도 ‘언젠간 동해로 가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들이거든요. 그러기 위해 경력을 쌓고 있어요. 돌아보면 저 혼자서도 지금까지 잘해온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작업으로 ‘살풀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웃인 ‘낭만사’의 김지홍이라고 저랑 안지도 벌써 8~9년이 되는데, 매번 뭔가 해보자는 이야기만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에 합심해서 ‘미지조우’라는 크루를 만들었어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원주에 있는 저와 같은 청년들의 살을 푸는 초상 작업이에요. 작업과 함께 전시를 하려고 해요.








오후대책 @afternoonaction_

에디터 | 신동화 @slow_mi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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