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과 표정, 눈빛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배우이자 예술가
극단 노뜰 이은아 배우
원주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문막 후용리에 작은 폐교를 개조해 만든 ‘후용공연예술센터’가 있다. 이곳은 1993년 창단한 극단 ‘노뜰’이 상주하는 창작공간이자 공연장, 예술가 거주공간으로 운영된다. 극단 ‘노뜰’은 이곳에서 몸짓과 표정, 호흡으로 관객에게 전율을 일으키는 연극과, 아이와 어른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책 공연도 펼친다. 비가 오는 늦여름의 어느 날, 제법 선선해진 바람을 느끼며 문막 후용리에 도착했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배우 이은아입니다. 극단 ‘노뜰’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가 하는 연극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연극에 비해서는 몸의 움직임을 많이 쓰는 형태이나, 그렇다고 말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작품의 성격에 따라 적절하게 비중이 달라지는 편이에요. 음악가나 미술 작가와 함께 극을 만들어가는 다원 예술 쪽에 가까운 작업도 많이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저 역시 ‘배우’와 ‘퍼포머’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요.

원주에 어떻게 정착하게 됐나요?
대학 때 연극동아리를 통해 연극을 하게 됐고, 이후에 극단에서 같이 작업한 선배님의 소개로 ‘노뜰’을 알게 되었어요. 강원도 원주의 폐교에서 함께 생활하며 공연한다는 이야기였죠. 당시 저의 비전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그러다가 당시 속해있던 극단을 나오면서 ‘노뜰’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았죠.
2004년에 오디션을 본 후로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게 됐고, 그 이후로 계속 이곳에 살고 있어요. 2012년 결혼을 하게 된 이후로는 주소지까지 원주로 이전해서 쭉 생활하고 있고요.
연극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일이 생겨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못 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비슷하다고 생각한 연극동아리를 찾게 된 거예요. 사실 저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당시에 제가 좋아하던 영화에서는 연출자의 역할이 더 컸거든요. 그래서 배우보다는 연출이 하고 싶었는데, 신입생은 안 시켜주다 보니 단역이나 조연부터 시작하게 됐죠.
그러다가 어떤 선배가 제게 ‘무대에서 멋있다’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 말이 가슴에 꽂히더라고요. 그때부터 배우에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배우에 관해 공부하고, 마음이 가고 그러다 보니 배우 일을 계속하게 됐죠.

극단 ‘노뜰’을 소개해 주세요.
극단 ‘노뜰’은 1993년 원주에서 창단했고요. 2000년 가을에 후용초등학교가 폐교되었고, 그 후에 공간을 꾸려서 지금까지 공연장과 레지던시 및 연습장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20년이 넘은 세월을 담은 공간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크거든요. 그래서 초연은 항상 이곳에서 해요. 저희의 뿌리 같은 곳이죠.
‘노뜰’의 공연은 ‘연극’이라는 카테고리가 주이긴 하지만 ‘배우’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기보다는 좀 더 확장된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해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시도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의 아티스트와 협업도 많이 하셨더라고요.
2005년에 리틀 아시아 크리에이터스 미팅(Little Asia Creator’s Meeting)*을 후용공연예술센터에서 진행했어요. 그때 같이 협업하게 된 말레이시아 호주계인 Tony Yab이 노뜰과의 협업을 제안했고, 그걸 2008년에 ‘붓다 마이 바디(The Buddha My Body)*’라는 공연으로 만들었어요. 연극을 베이스로 안무가와 뮤지션, 설치미술가와 배우들이 함께 다원 예술적인 작업으로 구현해냈죠.
그리고 두 번째 작업은 ‘결계(結界), kekkai*’라는 작업이었는데요. 부제로 ‘Beyond fixed boundaries’ 즉, 고정된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가 있어요. 이 작품은 설치미술 작가 Naomi의 제안으로 작업했고, 호주의 ‘캐슬 마인 페스티벌(Castlemaine State Festival)*’에도 초청되어 공연했고요. 세 번째 작업은 ‘서울의 물(Ashi-Yu meeting)’, 이것도 Naomi의 제안으로 작업하게 되었는데, 일본에는 족욕 문화가 있잖아요. 거기서 모티브를 얻은 거예요. 그래서 배우들이 함께 일본 온천마을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쇼케이스를 했고, 그 후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족욕탕과 같은 설치물을 만들어서 퍼포먼스를 했던 작업이에요.
* 리틀 아시아 크리에이터스 미팅(Little Asia Creator’s Meeting) | 아시아 예술가와 기획자간 네트워크로 2003년 홍콩아트센터, 2004년 타이페이 아티스트빌리지, 2005년 후용공연예술센터,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의 창작 워크숍과 국제 컨퍼런스, 프레젠테이션, 오픈 클래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창작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출처 : 극단 노뜰 보도자료)
* 붓다 마이 바디 (The Buddha My Body) | ‘붓다 마이 바디 (The Buddha My Body)’는 불교의 존재 개념에서 출발한다. 존재에 대한 주지적인 설명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부재와 결핍이 또 다른 생산체계인 ‘공’의 개념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출처 : 극단 노뜰 보도자료, https://youtu.be/E4Sis5KtryE)
* 결계(結界), kekkai | ‘결계’란 불교 용어로, 꿈과 현실처럼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세계를 이어주는 ‘선’이자 개념에 대한 통찰이다. 특히 Tony yab company와의 협업을 통해 무용, 피지컬 퍼포먼스, 텍스트, 미리 녹음된 음악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음악 등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신선한 무대를 선사한다. (출처 : 부천시 공식 블로그 - 판타시티)
* 캐슬 마인 페스티벌 (Castlemaine State Festival) | 1976년부터 개최된 호주의 대표적인 예술축제. 폐금광 지역을 배경으로 시각예술, 음악, 연극,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진행되며, 수많은 국제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예술의 장이다.

유튜브에서 ‘서울의 물(Ashi-Yu meeting)’ 공연 영상을 인상 깊게 봤는데, 퍼포먼스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어요.
‘서울의 물((Ashi-Yu meeting)’은 2016년 ‘서울거리예술축제’에 참여한 공연인데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 공원에 족욕탕과 같은 족욕을 할 수 있는 작은 욕조를 설치해 사람들이 지나면서 앉기도 하고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되었죠.
족욕은 ‘치유’의 의미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이 공간에 있는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근 이 시간만큼은 상처, 고통, 갈등이 사라지면 좋겠다’라는 염원을 담고 있어요. 사람들이 앉아있는 욕조 안에 퍼포머가 함께 몸을 담그면서 그 안의 모든 이들이 진동을 함께 느끼는 거죠.
당시 세월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저희 옆으로 전경들도 왔다 갔다 하면서 보기도 하고, 또 광화문 광장이 가진 상징성과 퍼포먼스가 연결되기도 해서 그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 <서울의 물> | https://youtu.be/KAd8CoGHfcs
유튜브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in 중앙시장*’을 봤어요. 세월이 지난 만큼 원주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한다면 굉장히 유의미한 작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2011년 초반으로 기억하는데 저희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에 해외 아티스트와 국내 아티스트를 초대해서 중앙시장에서 공연했던 적이 있어요. 그 후 2019년에 문막시장에서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쇼케이스까지 했었어요. 코로나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요.
* <아티스트 레지던시 in 중앙시장> | https://youtu.be/hb3NfLgtWMI

참여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제가 처음 ‘노뜰’에 들어와서 한 작품이 <귀환*>이라는 작품이었어요. 꽤 오랫동안 배우들도 바뀌면서 작업해서 더 기억에 남아요. 조금 더 배우들을 위한, 배우의 이야기라는 느낌도 있고, 어떻게 보면 극단 노뜰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보여준 레퍼토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가장 최근작인 <침묵*>도 기억에 남죠. 이 두 가지 연극 모두 작품 내에서 배우와 캐릭터의 경계를 넘나드는 부분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배우로서 이야기를 하다가 극으로 들어가면서 극 속의 캐릭터로 전환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을 좋아해요. 또 가장 처음 한 작업과 가장 최근에 한 작업이라서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 연극 <귀환> | 브레히드의 시 죽은 병사의 전설을 근간으로 새롭게 쓰인 작품이다. 삶의 목마름으로 전쟁 같은 일상을 피해 떠난 소시민들의 방랑이기도 한 이 연극은 일상이 이미 전쟁이 되어버린 어느 낯선 땅에서 일어난 몇 년간의 이야기이다. (출처 : 극단 노뜰 유튜브, https://youtu.be/HbUWdkjgH4Y )
* 연극 <침묵> | 극단 노뜰의 전쟁 연작 II <침묵>은 전쟁에서 일어난 수많은 학살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자 이야기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전쟁과 집단학살의 사실적 기록,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전쟁이 가진 속성들을 연극적 구성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출처 : 극단 노뜰 보도자료, 붉은 분노 씨어터 필름 : https://youtu.be/kBpQ4V4Dvso )
연극 <침묵>을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모티브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노뜰’에서 2019년부터 전쟁 연작을 하고 있거든요. 첫 번째는 <국가*>로 재작년부터 공연했고 올해도 10월 셋째 주 공연 예정인 작품이고요. 얼마 전 공연한 <침묵>은 제주 4.3사건을 을 모티브로 시작하게 됐어요. ‘전쟁에서의 침묵이란 무엇인가?’라는 키워드를 연출자가 던져주었고, ‘그들이 말하지 못한 것, 혹은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출발해서 그것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배우들이 함께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처음에는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이 아는 정도였는데,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알면 알수록 보이지 않던 거대한 것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해서 40분 정도의 쇼케이스를 만들게 되었고, 그걸 좀 더 확장해서 올해 <침묵>이라는 극을 완성하게 된 거예요.
* 연극 <국가> | 국가의 요구에 의해 전쟁에 나가 두려움, 고통, 동료들의 숱한 죽음을 마주하고 귀향한 한 남자가, 세상의 외면으로 인해 절망과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출처 : 극단 노뜰 보도자료, https://youtu.be/PreOG7iJUfc )
연극 <침묵>, 제주도 공연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2020년 2월에 제주도에서 쇼케이스를 했을 때는 막 코로나가 시작되던 터라 관객들이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관람했던 시기였어요. 사실 처음에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제주에서 하루 한 회 공연을 진행했는데, 100명이 넘는 관객이 찾아주셨어요.
이후 지난 5월에는 제주 4.3사건을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전쟁과 학살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해서 공연했는데 관객분들이 훨씬 더 공감해서 보셨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완성된 <침묵>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지금도 지구의 어떤 곳에서는 자행되는, 세상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공감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공연을 구성하는 몸짓들은 어떻게 구성하나요?
보통은 움직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습하면서 즉흥을 통해 구축하죠. 특히 저희의 경우는 연출자가 정해주는 것이 문장 하나 정도이고, 나머지 살을 붙이고 채워나가는 것은 배우의 몫이에요. 연출자가 ‘저기서 여기까지 와’라고 이야기하면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생겨나는 움직임들은 배우가 만들어가는 거죠.
그런 몸짓은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나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습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연습할 때 공연을 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쓰다 보면 새로운 영감이 생기고, 단계가 발전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리허설을 할 때도 거의 공연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쓰죠.

ⓒ 박동명
그렇게 에너지를 쏟다 보면 어느 순간 소진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연습할 때보다 공연할 때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돼요. 공연할 때는 관객들의 에너지를 같이 품고, 또 저항해야 하니까요. 공연 중에 관객들이 반응이 좋으면 끝나고도 에너지가 남아 있는데, 호응이 없거나 관객과 소통이 안 되는 느낌의 공연은 소진이 훨씬 많이 돼요. 그런 날은 그냥 끝나자마자 잠들 정도로 힘이 빠지더라고요.
공연에 관한 ‘나만의 루틴’ 같은 것이 있으세요?
공연 전에는 저녁을 안 먹어요. 원래 아침과 저녁만 먹는데, 공연 당일에는 아침만 먹고, 저녁까지 속이 비어있는 상태로 공연에 들어가요. 그래야 가뿐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공연이 끝나고는 그냥 쉽니다. 거의 죽은 듯이 쉬어요. (웃음)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의 대본을 가지고 똑같은 사람이랑 매일 같이 연습하지만, 매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공간이 가진 에너지와 그날, 그 시간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다르니까요.
저는 그러한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극의 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간이 담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받고 싶어 해요. 공간뿐 아니라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관객들의 에너지도 다르거든요. 그러한 약간의 차이가 공연 때에 아주 많은 것들을 좌우하기도 하고요.
결국 연습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공연 당시에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얼마만큼 흡수하고 교감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공연을 하기 전까지는 공연 자체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연기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지 궁금해요.
연습하면서 구축해놓은 플롯이 있으니까 공연을 하면서는 일단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요. 극 전체의 상황을 끌고 가야 하는 나와, 극 속의 캐릭터로서 행위를 하는 나의 두 가지 자아를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상황이 다양하게 펼쳐지거든요. 관객들이 퍼포머에게 집중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특히 야외에서 퍼포먼스를 할 때는 더 다양한 변수가 있으니 오감이 열려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나요?
코로나 이전에는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과 뒤풀이를 했거든요. 어쩌다 오신 분들인데 공연이 좋고 같이 술 마시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친구처럼 지내게 되는 경우들이 꽤 있어요. 그렇게 이어지는 인연들이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기도 하고요. 그걸 통해 얻는 에너지가 컸어요. 배우로서, 작업자로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관객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작품에 대한 의미가 더 풍성해지고, ‘관객으로 볼 때는 이런 부분도 있겠구나’라는 것을 다음 작업으로 이어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가장 아쉬워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문화를 지자체의 지원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잘 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외부의 것을 이식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멀티플렉스처럼 화려하고 웅장하게 뭔가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원래 있던 자리에 남아 있으면 문화적 충족을 위해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찾게 되고, 계속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도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됐지만 처음 와보시는 분들도 아직 많아요. 그래도 한 번 오시면 다른 분들 모시고 계속 오시더라고요. 그전에는 서울에서 오는 관객이 많았는데, 여주, 청주, 충주, 원주권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렇게 자꾸 늘어나게 되더라고요.
지역에서 지속해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극단에 속한 배우 중 몇몇은 이곳에 거주하고 있어요.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한몫하죠. 도시에서 각자 생활하면 주거비와 식비에 드는 비용이 아주 크잖아요. 함께 살면 그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저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그 수익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예술가들은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리고 함께 생활하니까 작품 활동을 할 때도 지속해서 한 호흡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내 삶의 모토나 방향이 있다면?
진심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는 것도 진심으로 살고, 작품도 진심으로 대하고 싶고요. 진심이지 않으면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제가 하는 일련의 작업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해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연극과 공연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걸어온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완성되지 않아서 앞으로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현재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나요?
‘연극을 한다’라고 하면 “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니까 좋겠다.”라는 말을 종종 들어요. 그건 ‘진짜 좋겠다.’라는 것과 ‘넌 아직도 그러고 사니?’라는 양가적인 의미로 읽히더라고요. 사실 그런 말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웃음) 연극을 좋아해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 일을 단순히 ‘좋아한다’라는 마음으로만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요. 지금은 다른 의미의 ‘좋음’이 있죠.
저희가 하는 일은 대중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직접 이곳을 찾아와주시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깊이 관여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 보람, 즐거움이 있죠. 그런 과정에서 읽히는 새로운 것들이 있고, 또 작업으로 확장되기도 해요. 이전과는 다른 즐거움, 다른 면에서 이 일을 좋아하며 살고 있어요.

극단 생활을 오래 하시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없으세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가 떠나거나,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사람들이 떠나는 경우엔 같이 호흡했던 것들이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가야 하니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세대와 세대 사이에 공백이 생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물 흐르듯이 흘러왔을 텐데, 돌이켜보면 중간마다 빈 세대의 공백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아직 고민이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이 찾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같이 할 사람들이 중요해요.
앞으로 연극배우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요새는 오롯이 ‘연극배우’를 꿈꾸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요?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배우를 하겠다고 연극 영화과를 지원해서 시작했다가 영화나 드라마, 매체의 배우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연극배우’로만 남는 사람은 몇 안 되는 것 같아요.
정말로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면 인내심이 가장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참는 것, 버티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단순한 배우를 넘어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되기 위한 자기 정립들이 필요하고요. 항상 공부하고 정진하는 것이 정체성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죠. 결국 연극배우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고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살아가기 위해 정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사실 계획이라는 것은 딱히 없는데, 요즘 드는 생각들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무뎌지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최근 1년 사이에 ‘나이 듦’을 체감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게 확 느껴지니까 ‘내가 지금 어떤 부분에서는 무뎌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제가 이제 40대거든요.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극단의 막내였고, 저의 2~30대를 이곳에서 보냈는데, ‘나이 듦’이라는 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서서히 보이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확 오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상황이 되지 않도록 계속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해요. 늘 만나는 사람들이고, 매일 보는 주변 환경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극단 노뜰 @nottle93
에디터 | 신동화 @slow_mi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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