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션 맵핑, 오디오 비주얼… 낯설고 생소한 장르로
로컬 신(Scene)의 지평을 서서히 바꾸는 모험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Crazy Radio 최종천
오래된 단관극장의 외벽에 미디어 파사드 공연을 하고,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의 낡은 골목길을 수집해 비주얼 아트 작업을 한다. 주말에는 가끔 서울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반전 시위에 참여해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한글과 함께 꼭 영어로 문장을 번역해 세계 사람들과 공유한다. 강원도 원주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크루를 만들어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원대한 꿈에 도전하는 그를 만났다.
이른 아침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시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사실 어제도 밤을 새워서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터뷰하러 와주신다고 하는데 당연히 일어나서 맞이해야죠. (웃음)

감사해요. 자, 이제 잠을 깨고,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웃음) 소개 먼저 해주실래요?
네, 저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예요. 대중들에게 딱 와닿는 단어로는 흔히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부르죠.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항상 여행을 꿈꾸고, 모험을 좋아하고, 음악도 사랑하는 원주 사는 청년입니다. 원주에서 쭉 살았어요.
*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여 영상, 공연, 설치미술 등 장르를 융합하여 표현하는 아티스트

하시는 작업에 관해 소개해주세요.
일단 프로젝션 맵핑과 오디오 비주얼을 하는데, 주로 오디오 비주얼 작업을 많이 해요. 프로젝션 맵핑은 기관이나 업체의 수요가 조금 있어서, 주로 협업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요. 미디어 관련된 대부분의 작업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픽 디자인, 미디어 설치나 프로젝션 맵핑, 오디오 비주얼을 해요.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들이 막 나오는데, 자세히 알려주실래요?
‘오디오 비주얼’은 사운드와 반응하는 미디어라고 할 수 있어요. 기본적인 미디어아트에서 사운드 반응형 퍼포먼스를 좀 더 중점에 둔 거죠. 그래서 설치 미술보다는 공연에 가까워요. 영상에 사운드를 반응하게 작업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도 가능하고요.
볼륨이나 리듬에 따라 달라지게 하고, 또 ‘프리퀀시’라고 하는데, 음원의 하이, 미들, 로우의 주파수에 따라 분포도가 다르거든요. 배경 사운드를 분석해서 영상과 반응하게 하는 작업을 해요. 그래서 좀 더 사운드와 함께 역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거죠.
‘프로젝션 맵핑’은 오히려 설치 미술에 가까워요. 아까 수요에 관해 잠시 언급을 했는데, 지자체의 기관이나 업체가 운영하는 공간이 있다 보니 그 공간을 활용한 기획으로 프로젝션 맵핑을 의뢰하기도 해요. 보통은 스크린을 활용하는데, 때에 따라 오브제나 건물 외벽의 평평한 면을 이용해 영상을 투영하기도 하고요. 프로젝션 맵핑은 영상과 비주얼, 컴퓨터 그래픽을 접목하는 설치 작업이에요.
사실 둘은 따로 떼어놓고 보기보다는 프로젝션 맵핑 안에 사운드를 반응하게 하면 그게 오디오 비주얼이 되기도 하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 혹은 분리할 수도 있어요. 작업자의 의도에 따라 작업물이 달라지곤 하죠.

‘미디어아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가 원래 밴드 음악을 했어요. 처음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려고 영상을 찍게 된 거죠. 뮤직비디오는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이펙트를 많이 사용하거든요. 그러면서 재미를 붙였어요.
처음에는 비디오 이펙트(Video Effects)* 작업만 해보다가 비디오로 하는 퍼포먼스 장르를 알게 되었죠. 음악을 틀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DJ처럼 비디오로 퍼포먼스를 하는 VJ(Visual Jockey)*라는 장르가 있거든요. 그러면서 그래픽 모션이나 디자인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도 하게 되었죠. 미디어로 하는 독립적인 작업을 ‘미디어아트’라고 하더라고요. 영상 관련된 여러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미디어아트를 시작하게 된 거죠.
* 비디오 이펙트(Video Effects) | 영상 편집기술 중 영상을 좀 더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장면 효과를 말한다.
* VJ(Visual Jackey) | 영상을 통해 클럽의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으로, 직접 작업한 동영상을 바탕으로 영상 믹스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단순히 뮤직비디오를 소개하는 일반 비디오자키와는 다르다.
지금 다루는 장르가 생소하다 보니 어떤 루트를 통해 입문하게 되는지도 궁금해요.
일반적으로 미디어학과라는 전공학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4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 간단한 것들은 인터넷이나 유튜브 통해서 배웠거든요. 그러다가 한계가 생기더라고요. 서울에서 한 1년 정도 살게 되었는데, 그때 홍대의 KT 상상 마당에 VJ(Visual Jockey) 클래스가 있었어요. 두 달짜리 클래스를 수강했는데 그때 많이 배웠죠.
당시에는 영상이나 사진, 음악 프로그램을 나름 꽤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VJ 프로그램을 접하고는 정말 생소했어요. VDMX5라는 프로그램을 썼는데, 그 프로그램은 실시간 비디오 플레이와 비주얼 이펙터 기능을 해서 공연할 때 많이 쓰여요. 그걸 시작으로 툴을 다루고 응용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된 거죠. 지금은 터치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그래픽 디자인 툴의 하나로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구현할 수 있어요.
그때만 해도 장르가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다 보니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기본적인 툴을 배우면서 작업에 관한 접근 방식을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시작해서 점점 저만의 스킬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거의 처음 생기는 분야에 뛰어든 거라서 정해진 길이 없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그러면서 스스로 테스트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간 해오신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그동안 해온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카데미극장에서 진행했던 미디어 파사드 작업이에요. 원주의 오래된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극장을 보존하기 위한 재생사업의 한 부분에 동참하게 되었죠. 스크린 대신 극장 건물 전면에 영상을 쏘는 작업이었는데, 사실 이렇게 큰 규모로 작업해 본 적이 없어서 될까 싶었는데 성공적으로 공연을 진행하게 되어서 좋았어요. ‘아폴로 프로젝트(Apollo Project)*’라는 퍼포먼스였는데, 많은 시민이 좋아해 주셔서 더욱 의미 있었죠.
그동안의 작업은 개인적인 프로젝트나 작은 협업 선에서 끝나는 정도였는데, 아폴로 프로젝트를 작업하면서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미디어 장르가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사인을 봤죠.
그 프로젝트를 계기로 원주영상미디어 센터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디지털 아트 워크샵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수업을 받은 분들과 함께 ‘에민슨(emInSen)*’이라는 디지털 아트 크루도 만들었죠. 크루 안에 음악 하시는 분이나 미술 작업하는 분들도 계셔서 본인들의 작업에 활용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아직은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에민슨에 속한 몇몇 분이 모여 원주한지테마파크랑 지역 문화 축제에서 전시도 했어요.
작년엔 주로 시민 대상으로 워크숍을 했어요. 원주영상미디어 센터에서 진행했던 정기 워크숍과 제가 개인적으로 외부에서 네트워크가 좀 있는 분들을 모셔서 원데이 워크숍도 따로 진행했죠.
* 아폴로 프로젝트(Apollo Project) | 음악, 춤, 드로잉,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아카데미극장 곳곳을 활용한 퍼포먼스. 극장 외벽을 활용한 프로젝션 맵핑쇼에 참여했다. 역동적인 비주얼 그래픽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통해 오래된 극장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미래를 상상하며 실험한 작품이다. (출처 : http://crazyradio.xyz/apollo-project/)
* 에민슨(Eminsen) | 원주 기반의 디지털 아트 연구 및 창작 네트워크 https://www.instagram.com/eminsen.w/
중간에 ‘그레이 그리핀(Gray Griffin)*’이라는 작업도 하셨잖아요?
네, 켄시더(Kencider)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는데요. 저와 재클린(Jacklin Ramirez)으로 불리는 희범이 형이 한 팀이에요. 형은 음악 했을 때부터 선배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됐죠. 원래는 형이 블루스 록(Blues rock) 장르의 음악을 하다가 나중에는 밴드 형식이 아닌 단독으로 활동하는 작업 방식으로 바뀌면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게 되셨거든요. 제가 영상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이런 비주얼 아트 장르가 있다는 걸 소개해 준 분도 형이었고요.
작업을 하다 보면 실제로 아티스트들이 협업하는 것들이 많아요. 저도 항상 사운드팀과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거든요. 사실 이전에도 형과 함께 작업을 많이 했었고요. 그러던 차에 형도 앨범을 내게 되었고, 저도 형과 협업하고 싶어서 이번에 아예 팀을 만들었죠. ‘플루이드 스코프(Fluid Scope)*’라는 온라인 싱글을 발매했고, 오디오 비주얼과 함께 ‘그레이 그리핀(Gray Griffin)’이라는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를 라이브 스트리밍 했어요.
* 그레이 그리핀(Gray Griffin) | 비주얼 아티스트 Crazy Radio와 일렉트로 뮤지션 Jacklin의 프로젝트팀 켄시더(KENCIDER)의 첫 번째 프로젝트 https://kencider.xyz/
* 플루이드 스코프(Fluid Scope) | https://kencider.xyz/music/

요즘은 우크라이나 반전 시위에 다니시잖아요.
네, 처음에는 SNS를 통해 아는 분이 러시아 대사관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계신 걸 봤어요. 그렇게 온라인상에서 응원만 하다가 단체 집회를 한다는 공지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날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낮에는 공연보고, 저녁에 참여하게 되었죠. 그걸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참여했어요.
현장 분위기는 어때요?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죠. 참혹한 전쟁 현장의 사진이나 문구, 퍼포먼스가 이어지고요. 흰옷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다거나 하는 퍼포먼스요. 학살반대, 어린이나 여성을 강간하는 전쟁 현장을 고발하는 문구들이 즐비해요. 그걸 들고 모두 가만히 서 있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요.
우크라이나 반전 관련된 작업도 하셨죠?
시위 현장에 참여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걸 기록으로 남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사람들 사진도 찍고 메시지도 담으면서 뉴스에서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죠. 가족이나 친구가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는 사연이나 개인적 사건들을 듣고 그걸 모티브 삼아 작업을 했어요.
기존에 하던 오디오 비주얼 작업에 시위현장을 3D로 캡처해서 비주얼 영상을 만들었어요. 사진을 360도 각도로 수십 장 찍어서 컴퓨터로 합쳐서 포인트 클라우드라는 기법을 사용했죠. 쉽게 말하자면 포인트 수만 개가 모여 하나의 형상을 나타내고 무브먼트를 줘서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기법이에요. 음악은 항상 같이하는 희범이 형과 켄시더(Kencider) 이름으로 퍼포먼스를 했어요. 지난 일요일에 바이버 프로덕션팀과 함께 고려대학교에서 공연 영상을 녹화했습니다. 곧 업로드될 거예요.

원래 국제적 이슈에 관해 관심이 많았나요?
어릴 때부터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봤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여행이 막 끌려서는 아니고요. 궁금하고 재미있어서 즐겨 봤었죠. 30대 초반에 내가 평생 살면서 안 해본 경험이 뭘까 생각해보니 ‘여행’을 안 해봤더라고요. 그래서 안 해본 걸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에 여행을 몇 번 다녀왔어요. 아시아, 태국, 홍콩, 일본, 유럽. 유럽은 좀 길게 다녀왔어요. 6개월, 9개월 두 번에 걸쳐서 다녀왔죠.
세상 사는 사람들 다 비슷하긴 하지만 문화나 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그런 게 아마 제가 하는 작업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줬겠죠. 우리는 매체를 통해 그들의 문화나 삶의 방식을 접하지만 그건 대부분 메이저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에요. 휴양지, 뉴욕의 번화가, 유럽의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건물들, 여유로운 삶… 그렇게 매체에서 보여 주는 것과 실제로 가서 직접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조금 다르죠. 그렇게 나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고, 로컬을 찾아다니며 나만 아는 공간들을 찾아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맺어진 관계들이 있다 보니 그들이 SNS에 올리는 포스팅이나 이슈들을 조금 더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는 것 같아요. TV에서 뉴스를 보면 그저 멀리 떨어진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내 친구의 동네나 친구가 직접 겪은 일을 포스팅하면 관계성이 생기잖아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고 관심이 생기고, 작은 응원의 메시지라도 보내게 되고요.
그렇게 국제적 이슈를 표현하게 된 첫 작품은 2019년에 원주 인동 소극장에서 공연했던 ‘알 투 피엠(R2PM)*’이라는 프로젝트였죠. 제가 원래부터 홍콩을 좋아했고, 또 홍콩을 다녀오면서 알게 된 친구들도 있어요. 홍콩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다길래 처음에는 잘 몰랐다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더 깊게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이럴 바에는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송환 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러 갔어요. 가서 시위 현장도 보고, 인터뷰도 하고, 스케치 촬영을 했고 그걸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사운드를 입혀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죠.
* 알 투 피엠(R2PM) | 원주의 인동 소극장에서 진행했던 비주얼 아트 공연. 홍콩 친구인 Stella의 인터뷰와 시위 현장에서 찍은 영상으로 만든 비주얼 아트와 재클린의 음악이 합쳐진 비주얼 아트 퍼포먼스.
(출처 : http://crazyradio.xyz/r2pm-live-visual-show-l-2019-l/)
홍콩에 직접 갔다 오셨던 거예요? 그래서 2021 커뮤니티 시네마 페스티벌*에서 GV를 하게 되신 거군요.
맞아요. 그때 커뮤니티 시네마 페스티벌에서 홍콩 민주화 관련된 영화 두 편을 상영했거든요. 거기에 대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달라고 하셔서 잠깐 참여했죠.
홍콩에서 송환 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을 때, 당시 시위대 그룹이 굉장히 컸어요. 저는 시위대의 중후반에 뒤따르면서 그냥 눈치껏 움직였죠. 낮에는 쇼핑몰에서 피켓 들고 가두시위를 하는 평화시위 위주였지만 저녁이 되면 경찰에서 집회를 허가해주지 않으니 점점 격렬해지더라고요. 어둡고 사람들도 많이 빠지니까 폭력을 쓰기도 했어요. 저도 쇼핑몰에 있었는데 저는 좀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멀리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막 뛰어가고, 저도 덩달아 막 뛰어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위대에 참여한 사람들이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었어요. 뉴스에서 접했을 때는 폭력적인 면을 많이 비췄는데, 물론 폭력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시위대끼리의 끈끈한 연대가 느껴졌어요. 경찰은 무기가 있고 장비가 있지만, 학생들이 가진 장비는 열악하잖아요. 시중에 구할 수 있는 박스나 플라스틱 안전모, 오토바이 헬멧, 자전거 헬멧을 쓰고 나오는 거예요. 시위대가 기니까 서로 앞에서 뒤로 인간 띠를 만들어 전달해주는 그런 광경들이 기억나요.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의 것을 쟁취하려고 엄청난 에너지와 목소리를 쏟아붓는구나. 내가 저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어린 친구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죠. 제가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맞서기보다는 도망가거나 다른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친구들이 참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사실 예전에 여행하다 만난 홍콩 친구가 홍콩의 민주화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처음 해줬는데, 당시에는 영어도 짧았고, (웃음) 처음엔 못 알아들었어요. 그 친구가 막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2019년에 홍콩 민주화 시위가 다시 발발하게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언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되었던 때라 그제야 내용이 들리고 그 친구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이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민주화 운동 관련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국제적 이슈라기보다는 내 친구가 사는 로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큰 영향력이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작은 위로라도, 그냥 제가 있는 자리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연대하는 거죠. 뭐 그렇다고 제가 국내 모든 집회를 나가진 않아요. 오해하지 마세요. (웃음)
* 2021 커뮤니티 시네마 페스티벌 | 전국 5개 지역(서울, 목포, 전주, 부산, 원주)의 소규모 영화상영공간과 영화문화단체가 함께하는 영화 페스티벌로, 지역사회에서 왜소한 문화권을 개선하고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을 영화를 통해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2021년 처음 개최되었다. 2021년의 의제는 ‘기후위기’와 ‘국제연대’였다.
(출처 : https://communitycinemafestival.com/)
요즘 집중하는 것이 있으세요?
요즘엔 스킬을 끌어올리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제가 주로 하는 디지털 작업은 보통 차갑고 딱딱하기 쉬워요. 여기에 생명력과 자연스러움을 담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생명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서사도 담아보고 싶고요. 이쪽 장르가 그런 면이 약하긴 한데, 서사를 담으면 이쪽 장르만 좋아하는 사람 말고도 더 바깥으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작년에는 교육 위주로 움직였는데, 교육도 중요하지만 직접 뭘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프로젝션 맵핑이랑 미디어 파사드를 간단하게라도 진행해보려고 해요. 예전에는 활성화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멈춰진 장소들, 건물, 공간을 모티브로 작업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지금은 재개발 지역인 원인동의 골목을 모티브로 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운영하지 않는 간이역, 버려진 골목이나 공간에 잠시나마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해요.

지역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느낀 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쪽 장르가 아시다시피 매우 좁잖아요. 제가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도 신(Scene) 자체가 좁으니까 조금이라도 넓혀보려고 하는 거거든요. (웃음) 국내는 규모가 작지만, 해외는 이미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있어요. 저도 작품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 제 작품을 가지고 그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자꾸 그쪽으로 지원도 해봤거든요. 절대적 기준은 없겠지만 그쪽에서 원하는 콘셉트가 있을 것이고, 선택도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잘해야 하거든요. 그렇다 보니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되어버린 거죠. 그러다가 힘이 좀 빠지고 지치기도 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역 내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작게나마 존재하니까요.
그렇게 시작해서 작은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하다 보니 결과가 썩 성공적이지는 않더라도 만족도는 굉장히 높더라고요. 사람들이 보러 오는 게 가능하구나, 작은 공연장이지만 사람들로 꽉 차 있는 모습이 뿌듯하기도 하고요. 물론 그 장르를 좋아해서 오셨다기보다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한다니까 오셔서 보는 분들이 훨씬 많으시겠지만, 그런 게 신기했어요. 작은 도시니까 오히려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였죠.
그런 식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주도적으로 일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작업이 규모가 있다 보니 기관이나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한 데, 처음엔 생소해하셨지만, 이제는 여러 경험치가 있으니 설득이 쉬워졌다고 할까요? (웃음)
지역에는 지역만의 특성이 있잖아요. 그걸 활용한 다양한 예술 분야가 있는데, 그런 지역 콘텐츠를 담아 새롭게 변형된 장르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우리가 하는 것들이 또 다른 퓨전 장르로, 어떻게 보면 선구자가 되어서 우리가 만든 용어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죠. 아직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만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일단 7월에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를 해요. 에민슨(emInSen)이 기획⋅주최하는 공연을 해보려고 해요. 오프라인으로는 처음 해보는 공연인데, 퍼포먼스 형태가 되겠죠. 저희끼리만 하기는 단순할 수 있어서 ‘디지털 세로토닌*’이라는 외부 게스트도 초대하려고 해요. 작년에 워크숍 강의로도 모셨던 팀이에요. 이런 공연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원주에 오디오 비주얼이라는 장르를 알리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될 거고, 최종적으로는 정기적으로 원주에서 오디오 비주얼 페스티벌을 여는 게 목표예요.
그리고 저희가 작업하고 공연하다 보면, 제대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없거든요. 소극장이나 공연장을 대여해서 하는데, 스크린이나 조명 장비들도 매번 새로 세팅해야 하고 공간적 제약에 따른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전용 극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이런 저희의 요청도 지자체에서 받아 주시겠죠? (웃음)
8월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가보고 싶었던 오디오 비주얼 페스티벌인 뮤텍(Mutek)에 가려고 해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하는 페스티벌인데요. 꿈의 페스티벌이죠. 이번엔 가볼 수 있겠죠?
* 디지털 세로토닌 | 비주얼 아티스트 Caroline Reize 와 뮤지션 Serotonin Curves의 콜라보 팀.
(출처 : https://www.instagram.com/digitalserotonin/)
* 뮤텍(Mutek) | 캐나다 및 각 국가 문화원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뮤직, 사운드, 뉴테크놀로지 페스티벌. 디지털 사운드, 음악 그리고 오디오-비주얼 간의 결합과 실험을 주요 작업으로 삼는 대표적인 디지털 음악 축제이다. 당 해에 선발된 우수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중남미에서 축제투어를 하기도 하는 등 국제적인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출처 : https://montreal.mutek.org/)
크레이지 라디오 최종천 @crazy.radio.film
에디터 | 신동화 @slow_mihak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